[스크랩] 잘못된 분리배출 방치·재활용 지원금 태부족..손놓은 정부
"플라스틱·스티로폼은 깨끗이 씻어 배출하는 것에 더욱 신경써야 겠습니다."
"재활용도 쓰레기이니 사용을 줄이기 위해 힘써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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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분리배출 방치·재활용 지원금 태부족..손놓은 정부
◆ 환경부가 자초한 쓰레기 대란 ◆
우리나라 재활용 쓰레기 처리는 크게 수거-재활용-수출-소각 등 4단계를 거치도록 짜여 있다. 만약 각 단계에서 불거진 문제점에 대해 환경부가 미리 보완·대응책을 마련했다면 지금과 같은 재활용 쓰레기 수거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나라 재활용 쓰레기 처리 과정에서 1차적으로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는 오염된 쓰레기 비중이 너무 높다는 점이다. 재활용 쓰레기로 수거됐지만 선별장에서 재활용 불가 판정을 받고 소각·매립 처리되는 쓰레기, 즉 '잔재물'이 너무 많다. 음식물에 오염된 플라스틱 용기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 재활용 쓰레기 대란이 벌어진 이후 환경부로부터 협조 요청을 받은 재활용 선별업체들도 잔재물은 여전히 수거하지 않으려 하고 있다.
환경부는 전체 재활용 쓰레기 중 잔재물 비중을 40%로 보고 있다. 환경시민단체들은 이보다 더 높은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서울환경운동연합 관계자는 "정부가 재활용 관련 통계를 파악하지 못하고 모든 정보를 재활용 업체에 의존하다 보니 정확한 현실 파악이 안 돼 있다"고 꼬집었다. 따라서 재활용 쓰레기 분리배출 단계부터 잔재물을 줄이는 방향으로 정책적 노력이 펼쳐져야 했지만 환경부는 거의 손을 놓다시피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환경부는 분리배출 홍보를 더 열심히 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모든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김준영 씨(32)는 "플라스틱·스티로폼을 깨끗이 씻어 배출하라는 말은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며 "이제 와서 홍보 운운하는 것은 결국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재활용 업체들도 환경부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한 재활용 쓰레기 선별업체 관계자는 "연간 2억원가량을 잔재물 처리에 쓰면서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거해왔다"며 "분리배출 때부터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했는데 정부가 '홍보가 잘 안 됐다'는 식으로 반응을 내놓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현실과 동떨어진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지원금 문제를 지금껏 개선하지 않고 있는 것도 환경부의 잘못이라는 지적이다.
EPR는 쓰레기를 발생시키는 제품의 제조업체가 재활용 선별업체들에 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재활용은 대개 그 자체로는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지원금이 동반된다. 지원금은 정부가 전년도 배출량을 기준으로 산정한 목표치까지만 나온다. 그 결과 캔·유리병·페트병 등은 90~100%의 목표 달성률을 보이는데, 유독 비닐만 달성률이 150%에 육박한다.
재활용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고 높게 평가할 일이 아니다. 100% 초과 구간은 지원금 없이 업체들이 손해를 보며 재활용을 하고 있음을 뜻한다. 지원금이 없으면 선별업체들은 생산비용의 절반, 심하게는 10분의 1 가격만 받고 재활용 폐비닐을 판다. 그간 선별업체들은 캔·플라스틱 등 EPR 지원금이 충분한 품목에서 얻는 이득으로 폐비닐 재활용에서 오는 손실을 벌충해왔다. 그러나 판매 가격이 더 떨어져 이마저 불가능해지자 아예 수거 거부에 나선 것이다.
한 선별업체 관계자는 "폐비닐 EPR 지원금이 합리화되지 않으면 중국이 수입을 재개하든, 분리수거가 잘되든 상관없이 수거 거부 사태가 언제든 재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같은 현상은 정부가 실제 폐비닐 배출량에 비해 EPR 목표치를 낮게 설정한 후 방치한 결과다. 쓰레기 배출 제조업체의 연매출이 10억원 미만일 경우 EPR 지원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조항이 있는데, 폐비닐은 다른 항목에 비해 영세 제조업체 비중이 높아 EPR 지원금이 낮게 책정됐다.
중국이 지난해 7월 세계무역기구(WTO)에 폐플라스틱, 폐비닐, 폐종이 등의 수입을 중단하겠다고 공지했지만 정부가 마땅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점도 질타받고 있다. 2016년 3월 환경부에 제출된 '재활용 제품 수요 창출을 위한 재활용시장 실태조사 연구' 용역에서도 쓰레기 대란이 올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는 이 보고서를 통해 "국제 유가 하락과 국내외 경기 침체 장기화에 따른 수요 위축 등으로 재활용 업체의 경영이 악화하고 있다"며 "재활용 시장 위축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재활용 시장 붕괴에 따른 자원 낭비와 폐기물 처리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결국 중국 수출길이 막히며 올해 1~2월 플라스틱과 폴리염화비닐(PVC) 수출량은 전년 동기 대비 92%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남은 쓰레기인 잔재물에 대해 신기술을 접목해 소각을 적극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소각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과 정부의 친환경 에너지 정책과 맞물려 소각정책이 현재 답보 상태지만 소각을 새로운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육성 가능한 대표적인 산업이 고형연료(SRF)다. SRF는 폐비닐, 플라스틱, 고무 등이 선별·파쇄·압축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주로 열병합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산업용 보일러 등에 사용된다.
환경부는 지금까지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우선순위를 두고 SRF를 비롯한 소각 관련 인허가에 소극적이었다. 이에 관련 사업자들은 경영난까지 호소하고 있다. 소각장에서 100년 전의 소각 기술을 그대로 사용해 대기를 악화시키는 것도 이 같은 정부 방침 탓으로 분석된다.
한 SRF업체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소각장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지고 공무원들은 앞장서서 소각장이나 폐기물 고형연료 사업장에 대한 조사를 벌여 폐쇄 조치까지 내리고 있다"며 "오히려 중국 업체·기관 등에서 적극적인 기술 도입 의사를 밝혀 사업 거점을 중국으로 옮기는 것도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문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