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마태복음이 왕으로 오신 메시야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본서는 종으로 오신 메시야, 메시야의 수난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특히 마태복음이 마치 그리스도의 전기를 읽듯이 시간순으로 서술하는 데 비해 본서는 사건들을 주제별로 정리한 듯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본서는 더더욱 내용이 단순 명료하며 생기 있고 박진감이 넘친다.

 

제목: 헬라어 성경에는 본서 제목이 카타 마르콘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마가에 의한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 근거하여 오늘날 영어성경을 비롯한 모든 성경들은 본서를 마가복음이라 부른다.

 

저자: 본서에서 마가 저작설과 관련된 내용은 거의 찾기 어렵다. 그러나 (1)보아너게, 고르반, 에바다, 아바 등 8개의 아람어가 사용되고 있는 점 (2)헬라어에는 그리 능숙하지 못한 점 (3)레기온, 고드란트, 브라이도리온 등 여러 개의 라틴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점 (4)반면 유대 풍습에 익숙하고 예루살렘 지리에 밝은 점 (5)이방인의 믿음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점(7:24-30) (6)예수님을 직접 목격한 자가 아니라는 점 (7)무엇보다도 본서의 논리적 흐름과 전개가 사도 베드로의 설교와 유사하다는 점(10:34-43) 등을 들어 본서 저자를 사도 베드로의 통역을 맡았던 마가 요한으로 본다. 이런 점은 소아시아 히에라볼리 감독 파피아스, 리용 감독 이레니우스,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트 등도 지지한다. 마가 요한은 바나바의 생질로 사도 바울의 1차 선교여행에 동참했다가 중도에 포기하고 귀향하여 한동안 바울과의 관계가 원만치 못했으나 후에 그는 바울의 신실한 조력자가 되었고(4:10, 딤후4:11, 1:24), 또 사도 베드로의 통역자로 활동하였다(벧전5:3).

 

기록 시기: 교부 이레니우스는 마가가 사도 베드로와 바울 사후(B.C.67년경) 두 사도들을 통해 들은 주님의 행적들을 주제별로 모아 기록하였다고 증언한다. 또 본서에 예루살렘 멸망 예언(13)이 미래적 사건으로 묘사되고 있는 점 등으로 보아 대략 67-70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마태복음과 기록 시기가 비슷하나 대개의 학자들은 본서를 4복음서 중 최초의 것으로 본다.

 

기록 장소: 사도 바울은 로마 옥중에 있을 때 마가를 로마로 불렀으며(딤후4:11), 그 어간에 로마에 있던 사도 베드로의 통역도 맡은 것으로 보인다(벧전5:13). 그래서 교부들은 바울과 베드로가 순교한 뒤 마가가 로마에서 본서를 기록한 것으로 본다.

 

마가복음의 배경과 무대: 마가는 거두절미하고 본서 시작부터 예수님의 침례를 다룬다. 그리고 계속해서 갈릴리 사역, 두로와 시돈 데가볼리, 가이사랴 빌립보 등 북방 사역, 베레아 등 요단 동편 사역, 예루살렘 입성, 수난과 십자가 죽음 순으로 예수님의 공생애를 소개한다. (베레아: 페란 투 요르다누의 축약형으로 ‘요단 저편'이라는 뜻. 헤롯 대왕이 통치한 왕국의 일부인 트랜스 요르단 지역의 땅을 말한다. B.C.4년 헤롯 대왕이 죽자 그의 아들 헤롯 안디바가 이곳과 갈릴리를 물려받았다. 요한이 베레아(요단 강 건너편이라 묘사됨)의 한 성읍인 베다니에서 침례를 베풀었다(1:28). 베레아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예루살렘을 향해 마지막으로 가셨던 길에 위치해 있어서 그 중요성을 갖는다. 유대사가 요세푸스에 의하면, 베레아의 수도는 지금의 텔 가두르인 가다라 또는 가돌이었는데, 이곳은 데가볼리에 있는 같은 이름의 성읍과 구분된다고 했다.)

 

내용 구성: 1:1-13 침례 / 1:14-6:29 갈릴리 사역 / 6:30-9:50 북방 사역 / 10장 베레아 사역 / 11-13장 예루살렘 입성 / 14-15장 수난과 죽음 / 16장 부활 승천

 

마가: 큰 망치,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 히브리식 본명은 요한(15:37). 마가는 로마식 이름. 그래서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마가라 하는 요한‘(12:12, 25)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바나바의 생질(조카)이었고(4:10), 마리아의 아들(12:12). 예루살렘 출신의 레위 지파 사람으로 바울과 바나바 간의 충돌의 빌미를 제공했던 인물이다(15:36-39). 전승에 의하면, 그가 70인 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마가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1) 그의 집이 초대 예루살렘 교회당으로 사용된 것(마가의 다랑방은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던 곳이자, 오순절 교회가 탄생한 장소였음)으로 볼 때 그는 어려서부터 신실한 신앙 가운데 성장한 것으로 보인다(1:12-15, 12:12).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벗은 몸으로 도망친 인물과 동일인으로 추정한다(14:51-52). (2) 사도 바울의 1차 선교여행 때 삼촌 바나바와 함께 동행하였으나 도중에 귀향한다(13:13). (3) 바울의 2차 선교여행 때 마가의 동행 여부를 놓고 바울과 바나바가 심하게 다투어 서로 결별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후 바나바와 함께 구브로 섬으로 건너가 사역하였다(15:39). (4) 10여 년 후 로마 옥중에 있는 바울을 돕고 좋은 협력자가 된다(1:24, 딤후4:1). 바울은 마가를 인정하면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마가를 기꺼이 맞아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바울은 마가 일행(유스도)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가 되었으며 그들이 자신에게 참된 위로가 되었다고 피력하기도 했다(4:10-11). (5) 사도 요한의 제자 파피아스에 의하면, 바울의 사후 로마에서 사도 베드로의 통역을 맡은 것으로 전해진다(벧전5:13). (6) 파피아스에 의하면, 베드로를 통해 마가복음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도 한다. (7) 전승에 의하면, 애굽의 지중해 연안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8) 마가복음을 기록한(A.D.67-70년경) 직후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출처: 생명의 말씀사 「라이프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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